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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eid Ehrgeizig/오늘과 또 오늘

2016/07/18 일기

Photo by 쿸흐다스




가끔 나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.

'예전에 내가 조금 더 적극적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까?'


'아니면,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?'


매번 고민을 해 봐도 결론은 단 한가지, 내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현재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. 내가 적극적이지 않아서 현재가 이런 것이라면, 또는 이 것이 내가 아무리 애써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게 그래서 뭐? 결론을 내린다고 해서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. 정말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. 왜 이런 것 같아? 너라면 어땠을 것 같아? 골백번을 물어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물어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. 어쩌다 내 마음에 와 닿는 한 구절을 누군가가 읊어 줄 것 같은 막연한 기대 때문에 멈추지 않은 것이 아니라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. 


이제는 감정이 매말라서 슬퍼도 눈물이 쉽게 나지도 않는데, 그런 딱딱한 감정을 뚫고 올라온 한 줄기같은 존재였다. 그 희미한 줄기를 발견하고 조금이라도 뚜렷해지도록 도와줄라치면 다시 그 감정이 닫쳐버린다. 내가 손을 대지 않으면 희미하게 남아있는, 그저 의미 없는 작은 흔적일 뿐인 존재가 내가 손을 대는 순간 무(無)의 상태로 변해 버린다. 사실 나는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. 의미 없지만 조그맣게 남아있는 미련같은 것이 좋은 것인지, 처음부터 형태도 냄새도 색깔도 없는 것이 차라리 나은지. 


최근에 만났던 지인께서 했던 말이 떠올랐다.


"어차피 누구의 것이 될 수 없고, 처음부터 쭉 그 상태였던 것을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이리 저리 다른 각도에서 봤기 때문이야."


이야기를 나눈 지 시간이 꽤 지났기 때문에 정확히 저런 어투로 이야기 하시지는 않았지만 대충 내용은 비슷한 것 같다. 뒤집어서 생각 해 보면 그 희미한 줄기는 내 딱딱한 감정 속에서 뚫고 올라 온 적도 없고, 갇혀 있었던 적도 없으며, 딱히 내가 손을 댔다고 해서 숨어버린 적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. 


어느 누가 객관적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추상적인 감정의 가운데에서 내가 납득할 만한 언어로 해석 할 수가 없어서, 마치 모스 부호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어리둥절 한 상태로 같은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던 나였다. 저 멀리서 나를 향해 날아오는 시그널의 의미가 살려달라는 건지, 알아달라는 건지, 그냥 인사인지 도통 알 수가없어 답답했다. 지금도 답답하다. 그 존재는 나에게 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상태로 똑같은 시그널을 보내오고 있고, 내 마음대로 다른 각도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던 나는 참 바보같았던 과거의 내 모습에 쥐구멍으로 숨고 싶을만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. 


존재로 인해 서러워 눈물 흘렸던 그 많은 날들 가운데, 나를 울렸던 존재는 과연 나를 울리고 싶었을까? 


아마도 아닐 것이다.


그럼 나를 웃게 하고 싶었을까?


아니라고는 못하지만, 맞다고도 할 수가 없다. 왜냐하면, 그 존재는 어차피 나의 행동이나 감정따위와는 상관이 없는 존재니까. 

딱히 나를 향해 시그널을 보낸 적도 없지만 하필 그 시그널을 내가 들어버렸을 뿐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. 

그렇다면, 내가 그 시그널을 향해 적극적으로 물고 늘어지던, 그저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포기하던 존재의 입장에서는 의미있는 해석이 될 수 없다. 

 

지나 간 사실과 바꿀 수 없는 나와 무심한 존재는 참 오랜 세월동안 나를 괴롭게 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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